김예슬 선언 정작 대학생에게는 의미가 없다. 세상다반사


좀 지난감이 있지만 예전부터 김예슬 선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도 대학생인 20대)

80년대의 대학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동시에 최루탄이 학교로 들어왔다면, 지금의 대학에는 스펙과 취업에 대한 열망과 동시에 스타벅스 같은 자본이 학교로 들어오고 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지금의 학생운동은 사실상 망해가고 있다. 80년대와 또다른 것은 개인의 성장이다. 막연한 말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오직 사회변혁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고 조직을 위해 몸을 바쳤다면, 지금은 조직을 위하더라도 설사 개인이 희생되려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다. 내가 있어야 조직이 있고 사회가 있는것이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김예슬 선언은 개인적 측면에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현시대의 반영이다. 이건 분명 내용을 떠나서 행위자체만 놓고 본다면 상당히 진보적이며 새로운 방법론적 운동이다. 하지만 20대들은 저 내용에 동의는 할 수 있지만 동참을 할 순없다.

물론 나도 대학이 싫다. 개나 소나 다 가는 대학이고 남들 가니깐 가는 대학이다. 고졸하고 취직할 수 있지만 대졸하고 또는 석사나 박사를 따야 월급이 올라간다. 이런 치열함 속에서 대학이 그저 기업의 도구로만 존재하는 현실이 나도 슬프고 막막하다. 하지만 대학을 거부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게 없다. 과연 지금의 20대들은 충분히 대학을 거부할 용기가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김예슬 선언을 옹호하고 지지해주는 세력은 진보적인 언론, 일부 교수 혹은 기고자들 뿐이다. 20대들은 내용의 동의에 대해서는 찬반의견이 나뉘겠지만 동참에 대해서는 그저 버로우를 탈 뿐이다.

분명 신선한 충격이며 선언한 것 자체에 김예슬씨의 용기에 대단하다고 말할 순 있지만 오늘도 우리는 도서관에 토익과 토플책을 펼치고 학점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묵묵히 만들어진 이 구조를 따라갈 뿐이다.

파도타기 개소리

난 심심하면 파도타기를 한다. 그것도 내가 하지않는 싸이 파도타기~
나는 누군가를 지켜보지만 남은 누가 자기를 지켜보는지 모르는 이 아이러니가 내가 파도타기를 통해 얻을수 있는 카타르시스다. 뭐 이런 변태새끼가 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참 재밌다. 하하하

새삼 시간이 변했다는걸 알았다.
대학교 1학년 때 잠깐 알았던 한 여자아이는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고, 심심풀이로 유럽에 베낭여행을 갔다온 친구는 어느새 유럽에 정착해 있었다. 그 누구보다 가열차게 투쟁하던 한 사나이는 어느새 어설픈 말년병장이 되어있었다.
모두가 충격 그 자체다. 시간이 변한건지 사람이 변한건지 알 순 없지만 분명한건 나도 변했다는 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얼마나, 어떻게 변했는지 알 턱이 없다. 설령 안다고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참 신기하다. 오른손의 검지를 까딱이며 파도타기를 했을 뿐인데 내 마음은 거친 폭풍우가 몰아친다.
사실 나도 내가 변한건 안다. 매일매일 똑같은 거울에 똑같은 얼굴을 봐도 나는 변한게 없다고 착각하려할 뿐이고, 혈압을 올리는 신문기사를 봐도 이제 그저 고개만 갸우뚱 하는 그런 사람이 됐다. 

며칠 전 말년휴가를 나온 후배와 가볍게 맥주를 먹었다.
후배는 나에게 참 많이 변했다고 했다.
물을 엄청나게 탄 싸구려 생맥주가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차마 내가 어떻게 변했느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말없이 안 쓴 맥주를 쓰게 느끼며 먹을 뿐이다.

차나 집을 산다. 개소리

대부분 12년의 초중고를 보내고 4년제를 나와서 대학원을 가거나 안가고 취직을 한다.
취직을 하면 회사에 20년정도 몸과 마음을 받쳐 회사와 일심동체가 된다.
이런 시스템에 사람들은 치열하게 경쟁하며 뛰어든다.
가끔 아침의 버스나 지하철에 탄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무얼위해 우린 그렇게 달려가는가 

난 사실 이런 구조적인게 좀 싫다.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다.
어른이 되면 알거라 하지만 지금 어른이다.
좀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긴하지만 너무나 큰 위험이 따르고, 난 이런것들을 할 용기도 없다.

하지만 남들처럼 차나 집은 안살거다.
차와 집은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은 그사람을 나타내고 표현해주는 대변인이다.
오죽하면 친구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길래 그랜져로 대답하는 광고가 나오겠는가.
분명한건 차나 집을 사려고 하면 내 인생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차나 집이된다. 내가 모하비나 48평짜리 집을 사려고 덤비는 순간 나의 인생은 오직 모하비와 48평을 위해 달려간다.
이런건 과연 누구의 인생일까? 내인생을 아닐것 같다.

문제는 근성이 아니다. 세상다반사

고졸로 성공할만한 근성가진 사람이면 요즘은 열공해서 좋은대학간다

모두들 근성만능주의에 빠져서 헤어나오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한 마디 지껄인다.
근성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다.

베이비붐세대가 고졸하고 근성으로 취직했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상고나와도 은행취직하는 시대였다. 지금 은행취직하려고 상고가는 사람 있는가? 그 당시는 사회가 막 일어서려는 시점에서 많은 곳에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단지 시대의 조류였을 뿐이다. 근성으로 베이비붐 세대가 그렇게 많이 이루어낼순 없었을 것이다.

김규삼이 정글고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근성해라는게 아니라고 본다. 단지 지금의 시대는 이러이러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너무 근성만능주의에 빠지지 말자 상황을 봐가며 근성을 해야한다.

트랙백에 트랙백 걸린 글에 대해 한마디만 하자면 대학은 너도가고 개나 소나 멍게나 해삼도 가니깐 가는거다. 진리탐구는 없다. 단지 너도 가니 나도 가야된다. 이거다.

무작정 근성만으로 모든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88만원세대'를 읽어봤으면 한다.

최초와 최고 개소리

최초가 좋은걸까? 최고가 좋은걸까?

사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최고가 되려고 하지만 최초가 되려고는 생각치 않는다.
최초는 모험이라는 위험이 따르므로 굳이 이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단지 최고를 향해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가장 올바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초가 없으면 최고는 없다.  장미란이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들어올린 것은 세계최고신기록이 아니라 세계최초신기록이다. 그 기록은 장미란이 인류역사상 가장 먼저 세운 기록일 뿐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스마트폰의 최고가 된 것도 스마트폰을 가장 먼저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초로 그것들을 해냈기 때문에 최고가 되었다.
따라서 최고가 되려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몇가지 습관을 읽고, 늘 자기혁신과 자기경영을 하고, 인맥을 넓히는 것보다, 최초가 되려고 노력하면 된다. 남들이 안하는 걸 생각해보면 된다. 
무리하게 최선을 다해서 최고가 되려고 하니 몸이 버티다 못해 중년이 되면 쓰러지는 것이다. 

공병호의 책이나 시크릿 같은 부류의 책을 죽을 때까지 읽어봐라. 절대 최고가 안되는 지름길이다. 
굳이 나무가 이차돈처럼 흰 피를 뿌려가면서까지 이러한 자기계발책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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